자율주행차 기술은 빠르게 발전하고 있지만, 그에 걸맞은 법적 제도와 보험 체계는 아직 충분히 정비되지 않은 상황이다. 사고 발생 시 책임 주체 문제부터 운전자 정의, 보험 보장 범위 등 새로운 기술이 불러온 법적 과제들은 실질적인 대응이 요구되는 현실적인 문제다. 이 글에서는 현재 자율주행차 관련 법제 현황과 보험 제도에서의 쟁점을 정리하고, 향후 필요한 제도적 방향을 함께 살펴본다.
자율주행 기술이 만든 새로운 질문들
자율주행차는 단순한 운송 수단의 혁신을 넘어, 사회 시스템 전반에 영향을 주는 변화의 중심에 있다. 차량이 사람의 손을 거치지 않고 스스로 주행 결정을 내리게 된다는 점에서, 기존 도로교통법이나 민사 책임 체계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문제가 속속 등장하고 있다. 예컨대 사고가 발생했을 때, 과연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운전자, 제조사, 혹은 소프트웨어 개발사 중 누구를 법적으로 책임 있는 주체로 간주해야 할까? 이러한 문제는 단순히 기술의 진보에만 기댈 수 없다. 기술은 빠르게 움직이지만, 법과 제도는 보다 신중하게 움직이는 특성이 있기 때문이다. 특히 자율주행은 '운전 주체'라는 개념 자체를 흔드는 기술이다. 사람 대신 인공지능이 차량을 제어하고 판단하는 상황에서, 지금까지 유지돼 온 법적 프레임은 재정비가 불가피하다. 우리나라도 이러한 흐름을 인식하고, 지난 몇 년간 자율주행차 관련 법률 및 제도 정비에 속도를 내고 있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일부 항목에 그치거나, 시범 적용 수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결국 자율주행차가 일상에 안착하려면 기술만큼이나 법제도적 안정장치가 함께 갖춰져야 한다. 이 글에서는 자율주행차와 관련된 주요 법적 쟁점들과 현재 보험 제도가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지를 중심으로 살펴보고자 한다.
자율주행차와 도로교통법의 간극
현재 대한민국 도로교통법은 기본적으로 인간 운전자를 중심으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운전 행위의 주체는 '사람'이며, 차량의 움직임은 사람의 판단과 조작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자율주행차는 이 틀을 근본적으로 흔든다. 특히 레벨3 이상, 즉 조건부 혹은 완전 자율주행이 가능한 차량의 경우, 운전자가 핸들에서 손을 떼는 상황이 법적으로 허용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정부는 이러한 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2020년 5월,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차의 운행을 위한 ‘자율주행자동차법’을 제정·시행했다. 이 법은 자율주행차의 정의, 운행 조건, 제작자 책임, 정보 기록 장치 설치 등 기존 교통법령으로는 포괄하기 어려운 요소들을 다루고 있다. 특히 '운전자'의 개념을 인간에서 시스템(ADS: Automated Driving System)으로 확장시킨 점은 큰 변화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이 법이 포괄하지 못한 영역도 많다. 예를 들어 긴급 상황에서 인공지능이 어떤 판단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그 판단이 미치는 윤리적·법적 책임은 어떻게 정리할 것인지에 대한 세부 기준은 여전히 모호하다. 또한 해외에서 발생한 사례들처럼, 차량 소프트웨어 업데이트 이후 발생한 사고에 대한 책임 소재 문제도 아직 국내에서는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았다.
사고 발생 시 책임은 누구에게 있는가?
자율주행차 관련 사고의 책임소재는 가장 복잡하고 민감한 이슈 중 하나다. 일반 차량과 달리 자율주행차의 경우 운전자 외에도 차량 제작사, 소프트웨어 공급자, 지도 제공 업체 등 다양한 주체가 차량 운행에 관여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차량이 보행자를 인식하지 못해 사고가 발생했을 경우, 이 책임은 운전자에게 있을까, 아니면 인식 알고리즘을 개발한 개발사에 있을까? 현행법에서는 차량 사고 시 대부분의 책임은 운전자에게 귀속된다. 하지만 자율주행 시스템이 주행을 완전히 제어하고 있었다면, 운전자의 과실을 인정하기 어렵다. 이에 따라 일부 국가에서는 '제조물 책임'으로 접근하거나, 시스템 오류에 의한 사고는 제조사 책임으로 간주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한국에서도 자율주행차 사고의 경우, 기존 보험체계가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에 대한 논의가 계속되고 있다. 특히 소프트웨어나 통신망의 오류처럼 기존 차량 사고와는 성격이 다른 사고 유형에 대해, 누구를 어떻게 배상 책임 주체로 규정할 것인지에 대한 법적 기준이 필요하다.
보험 제도는 어디까지 준비되어 있는가?
자율주행차 시대가 본격화되면, 보험 산업 역시 그에 맞게 변화하지 않으면 안 된다. 기존 자동차 보험은 기본적으로 운전자의 실수나 과실을 전제로 구성되어 있으므로, 시스템에 의한 사고가 증가하는 상황에서는 보장 체계의 재구성이 필요하다. 국내에서는 현재 '책임보험 + 자율주행 위험 특약' 형태로 일부 보험사가 자율주행차에 대한 보험 상품을 시범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이는 자율주행 상황에서 시스템 오류로 인한 사고 발생 시 일정 부분을 보장해주는 구조다. 다만 아직 표준화된 보험상품은 존재하지 않으며, 각 보험사마다 보장 범위와 조건이 상이하다. 또한 자율주행차는 사고 발생 시 ‘운행 기록 장치’를 통해 데이터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에서, 사고 원인 분석이 명확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는 보험사의 리스크 판단과 보상 결정에 있어 긍정적인 요소지만, 동시에 데이터 위변조 문제나 프라이버시 침해 이슈를 야기할 수 있다는 점에서 신중한 제도 설계가 필요하다. 미국이나 유럽 일부 국가에서는 제조사 책임을 전제로 한 보험 체계 전환, 혹은 별도의 기술 책임 보험 도입 논의도 이루어지고 있다. 한국도 이러한 논의에 발맞춰, 사고의 유형별 책임 주체 설정과 보험 연계 모델을 구체화해 나갈 필요가 있다.
규제 샌드박스와 법적 실험 공간
한국 정부는 자율주행 기술의 조기 상용화를 위해 ‘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활용하고 있다. 이는 일정한 지역과 시간 동안 기존 규제를 유예하거나 완화해, 신기술의 실증을 가능하게 하는 제도다. 대표적으로 세종시, 판교, 제주 등에서 자율주행 시범 운행 지구가 운영 중이며, 다양한 기술과 서비스가 실험되고 있다. 이 제도는 기술의 빠른 발전에 비해 느릴 수밖에 없는 법제도의 속도를 보완해주는 유연한 대안이 될 수 있다. 다만, 규제 샌드박스는 어디까지나 ‘실험 공간’일 뿐이기 때문에, 장기적으로는 이를 일반 도로 상황에서도 적용 가능한 법령으로 확장해 나가는 작업이 필수적이다. 또한 샌드박스에서 수집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실제 제도화에 앞서 충분한 검토가 이뤄져야 한다. 단순히 시범 사례를 넘어, 반복 가능한 표준과 지침을 마련하는 것이 자율주행 시대를 위한 법제도의 핵심 과제가 될 것이다.
기술보다 느린 법의 속도, 그러나 반드시 필요한 조율
자율주행차는 단순한 기술 진보를 넘어, 법적·제도적 틀을 근본적으로 다시 설계해야 하는 과제를 동반한다. 사고 책임, 운전자의 정의, 데이터 처리, 보험 보장 범위 등은 단순히 기술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다. 결국 기술이 사람을 대신하는 순간, 그 판단의 책임은 어디로 향해야 하는지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한국은 세계 최초로 자율주행 관련 전용법을 제정한 국가 중 하나이며, 실제 실증 테스트와 시범 운영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쌓아가고 있다. 그러나 아직까지는 제도화 초기 단계에 머무르고 있으며, 갈 길은 멀다. 앞으로 자율주행 기술이 우리의 일상으로 들어오려면, 기술의 진보만큼이나 제도와 법의 조율이 따라와야 한다. 보험 체계 역시 기존의 틀을 넘어, 다양한 책임 주체와 새로운 사고 유형을 반영할 수 있는 구조로 전환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중요한 것은, ‘안전’이라는 가치를 놓치지 않는 것이다. 기술은 편리함을 가져오지만, 법은 그 편리함을 모두가 안전하게 누릴 수 있도록 만드는 장치다. 자율주행차 역시 예외일 수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