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전자가 없는 세상, 길 위의 우리는 어떻게 반응해야 할까
요즘은 길거리에서 자율주행차를 마주치는 게 점점 낯설지 않아지고 있다. 처음엔 정말 미래 영화에서나 나올 법한 장면 같았지만, 이제 일부 지역에선 실제로 운전석에 아무도 없는 차량이 사람을 태우고 도로를 달린다. 그런데 한 가지 궁금해진다.
길을 건너려다 자동차를 마주쳤는데, 그 차에 운전자가 없다면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까?
기존에는 보행자와 운전자 사이에 자연스러운 ‘눈빛의 대화’가 있었다. 가볍게 눈을 마주치거나 고개를 끄덕이면 “건너세요”라는 의미가 전해졌다. 하지만 자율주행차는 그 눈빛을 주고받을 사람이 없다. 그러면 차가 스스로 "지금 건너셔도 됩니다"라는 신호를 보내야 한다.
바로 이걸 가능하게 해주는 기술이 **HMI(Human-Machine Interface)**다. 이름은 다소 기술적이지만, 본질은 간단하다. ‘기계와 사람이 어떻게 의사를 주고받을까’에 대한 고민이다.
차가 말없이 “건너세요”라고 전하는 방법
자율주행차가 보행자에게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은 생각보다 다양하다. 가장 많이 활용되는 건 차량 전면이나 루프에 설치된 LED 표시장치다. “STOP”이나 “GO”처럼 단순한 문구가 뜨기도 하고, 이모티콘이나 색상으로 현재 상태를 알려주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파란색 불빛은 대기 상태, 녹색은 ‘지나가도 좋다’는 의미로 통용된다. 직접적인 문구 없이도 빛의 색과 패턴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방식이다.
좀 더 고도화된 경우엔 차량 전면에 ‘눈 모양’ 그래픽이 등장한다. 실제로 포드에서는 이런 ‘디지털 눈’을 적용한 자율주행차를 실험했다. 차량이 보행자를 인식하면 눈동자가 따라 움직이며 마치 “당신을 보고 있어요”라고 말하는 듯한 효과를 준다.
이 외에도 현대차처럼 도로 위에 빛으로 가상의 횡단보도를 비추는 기술도 있다. 보행자가 차의 의도를 헷갈리지 않도록 시각적으로 강하게 전달하는 방식이다.
음성 안내를 활용하는 경우도 있다. “차량이 멈췄습니다. 건너셔도 됩니다” 같은 말이 차량 외부 스피커에서 나오면 확실히 인식은 쉬워진다.
하지만 여기에 문제도 있다. 시끄러운 도심, 언어가 다른 외국인, 혹은 청각장애인이 있는 상황을 생각해 보면, 단순히 음성으로 해결할 수만은 없다. 그래서 요즘엔 감각적으로 이해 가능한 디자인이 더 주목받고 있다.
이미 시작된 실험들, 그리고 기술이 풀지 못한 과제
이런 HMI 기술들은 이미 테스트 단계에서 다양한 방식으로 적용되고 있다. 예를 들어 중국의 바이두는 ‘Apollo Go’라는 자율주행 택시에 LED 신호를 탑재했고, 차량이 정차하거나 속도를 줄일 때 이를 외부로 시각화한다.
미국에선 여러 자율주행 스타트업들이 HMI 기능을 탑재한 차량을 실제 도로에 투입해 반응을 살피고 있다. 보행자뿐만 아니라 자전거, 킥보드, 심지어 반려견을 산책시키는 사람까지 포함한 다양한 상황 속에서 실험이 이뤄지는 중이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해결되지 않은 고민들도 있다.
가장 큰 문제는 ‘표준화 부족’이다. 각 회사가 자율적으로 다른 색상, 문구, 방식으로 의사소통을 하다 보면, 오히려 보행자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 A 차량에서는 파란 불빛이 ‘멈춤’이었는데, B 차량에선 ‘진행 가능’이라면 어떤 게 맞는지 헷갈릴 수밖에 없다.
문화적 차이도 고려해야 한다. 같은 색이라도 나라나 문화에 따라 해석이 다를 수 있다. 예를 들어 어떤 나라에서는 초록색이 ‘주의’를 뜻할 수도 있다. 또 노인이나 어린아이, 시각이나 청각이 불편한 사람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보편적인 디자인이 필요하다.
기술보다 앞서야 할 건, 사람을 향한 배려
결국 이 기술의 핵심은 기술 그 자체보다, ‘사람이 얼마나 쉽게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느냐’에 있다. HMI는 단순히 정보를 보내는 도구가 아니다. 차량과 사람이 진짜로 서로의 상태와 의도를 이해할 수 있게 하는 다리여야 한다.
한 가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도로는 오직 기술만을 위한 공간이 아니라는 점이다. 운전자든 보행자든, 누구나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하고, 그 안에는 시각적인 요소만이 아닌 맥락과 상황에 대한 배려도 담겨 있어야 한다.
자동차가 보행자에게 ‘멈출게요’라고 말할 수 있는 시대가 왔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고민해야 할 건 그 메시지를 어떻게 더 따뜻하고 정확하게 전달할 것인가다. 기술은 도구일 뿐, 결국 그 안에 담긴 ‘배려’와 ‘이해’가 진짜 소통을 만든다.
마무리: 자율주행차의 미래는 기술보다 사람을 이해하는 방향으로
자율주행차는 이제 막 실험 단계를 지나 점차 우리 곁으로 다가오고 있다. 하지만 진짜 자율주행 시대를 만들기 위해선 단순히 ‘잘 달리는 차’가 아니라, ‘사람과 소통하는 차’가 필요하다.
우리는 길을 건너면서 차의 눈빛을 보고 행동을 결정해 왔다. 자율주행차 시대에도 그 ‘눈빛’을 대신할 새로운 소통 방식이 필요하다.
그것이 바로 HMI 기술이 풀어야 할 숙제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해야 할 미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