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제보다 정교한 ‘가상 시뮬레이션’ 기술 이야기
현실 도로에 나오기 전, 자율주행차는 어떤 과정을 거칠까?
요즘 도심을 달리다 보면 자율주행 테스트 차량을 한두 대쯤은 보게 된다.
차 옆에 이상한 장비가 달려 있고, 지붕에는 카메라와 센서가 빙글빙글 돌아간다.
이 차들이 처음부터 도로에 나온 건 아니다.
본격적인 테스트 전에, 자율주행 시스템은 수없이 많은 가상 환경에서 먼저 연습을 거친다.
생각해 보면, 사람도 운전 연습을 할 때 시뮬레이터를 통해 기본을 익히는 경우가 있다.
하물며 스스로 판단하고 움직여야 하는 자율주행차라면,
실제 도로에 나가기 전에 철저하게 검증받는 건 필수다.
사고를 방지하기 위한 기본 중의 기본이기도 하다.
그래서 자율주행차의 개발 과정에서는 ‘가상 시뮬레이션’ 기술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 기술 덕분에 자동차는 실제 도로보다 더 다양한 조건, 더 위험한 상황, 더 예외적인 경우를 미리 경험할 수 있다.
왜 자율주행차 테스트에 시뮬레이션이 필요한가?
자율주행 기술은 결국 ‘위험을 얼마나 줄이느냐’의 싸움이다.
사고는 항상 드물게 일어나고, 그런 상황은 실제 도로에서는 좀처럼 만나기 어렵다.
하지만 개발자 입장에서는 바로 그런 드문 상황일수록 반드시 테스트해봐야 한다.
예를 들어 신호등이 꺼진 교차로, 안개 낀 산길, 야간에 무단횡단하는 보행자 등
일상적이지 않지만 실제로 일어날 수 있는 수많은 시나리오가 있다.
이런 조건을 실제 도로에서 반복해서 시험해 볼 수 있을까?
현실적으로 어렵고, 위험 부담도 크다.
하지만 가상 시뮬레이션 환경이라면 가능하다.
디지털로 구현된 가상의 도시는 낮, 밤, 비, 눈, 심지어 돌발 행동까지 마음대로 설정할 수 있다.
그리고 같은 상황을 수백 번 반복할 수도 있다.
자율주행차가 어떻게 반응하고, 개선이 필요한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다.
시뮬레이션 기술, 어떻게 구성되어 있을까?
단순히 컴퓨터 화면에 차가 움직이는 정도를 생각하면 안 된다.
자율주행용 시뮬레이션은 게임보다 훨씬 정밀하고 복잡하다.
1. 실제 도심과 비슷한 3D 지도
시뮬레이션은 실제 도로를 모델링한 고정밀 3D 맵을 기반으로 구성된다.
건물, 신호등, 차선, 횡단보도까지 정밀하게 복제되며, 차량의 위치 오차까지 측정할 수 있다.
덕분에 알고리즘은 실제 도로에서처럼 오차 없이 반응하는 훈련을 할 수 있다.
2. 날씨, 시간, 도로 조건까지 설정 가능
맑은 날 낮에만 잘 달리는 차는 반쪽짜리다.
시뮬레이션 환경에서는 비, 눈, 안개, 어둠 같은 다양한 조건을 조합해
센서의 반응과 알고리즘의 판단이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검증한다.
심지어 노면이 젖었을 때의 제동 거리까지 시뮬레이션할 수 있다.
3. 주변 객체의 ‘예측 불가능성’ 테스트
보행자가 갑자기 뛰어들거나, 오토바이가 차선 사이로 끼어드는 장면처럼
예측이 어려운 행동도 시뮬레이션으로 구현 가능하다.
이런 비정형적인 상황에 자율주행차가 얼마나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가
기술 완성도를 가늠하는 핵심 기준이 된다.
실제로는 누가 어떻게 활용하고 있을까?
구글의 자율주행 자회사 웨이모(Waymo)는 ‘Carcraft’라는 시뮬레이터를 운영한다.
이 플랫폼에서는 매일 수백만 킬로미터를 가상으로 주행하면서 알고리즘을 훈련시킨다.
한 번도 도로에 나가지 않고도 수년치의 주행을 하루 만에 돌려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테슬라 역시 실제 주행 데이터를 바탕으로 시뮬레이션 환경을 재구성하고,
거기서 발생한 문제 상황을 반복적으로 모델에 학습시킨다.
현대차, NVIDIA, 애플 등도 각자 자체 시뮬레이터를 보유하고 있으며,
요즘은 언리얼 엔진, 유니티 같은 게임 엔진을 활용한 시뮬레이터도 많이 쓰인다.
그래픽이 정교하고, 물리 엔진이 강력해 현실감을 높이기 좋기 때문이다.
시뮬레이션도 완벽하진 않다
아무리 정밀하게 만들어도 가상은 가상이다.
사람의 감정, 돌발 행동, 미묘한 눈빛이나 손짓 같은 비정형적 요소는 아직 가상에서 완벽히 재현하기 어렵다.
또한, 지나치게 정제된 테스트 조건만 반복되면 알고리즘이 실제 환경에선 당황할 수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실제 도로 주행 데이터로 시뮬레이션 환경을 구성하고,
다시 그 시뮬레이션을 통해 알고리즘을 보완하는 방식이 널리 사용된다.
실제와 가상의 경계를 좁히는 ‘하이브리드 훈련’이 대세가 된 것이다.
마무리: 현실보다 더 치열한 가상 연습장
자율주행차는 도로 위를 천천히 달리며 완성되지 않는다.
그 뒤에는 수천 번의 가상 주행, 수많은 오류 수정, 반복된 상황 재현이 있다.
우리가 일상에서 마주치는 자율주행차는 겉보기엔 조용히 달리는 듯하지만,
그 안에선 수백만 번의 연습이 축적된 결과물이 작동하고 있다.
그리고 그 연습은 오늘도 현실보다 더 복잡한 가상도시 속에서 계속되고 있다.
사람을 태우기 전, 먼저 수천 번 실패해보는 것.
그게 자율주행이 안전에 다가가는 방식이다.